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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쓸한 이야기: "~노?"하는 사투리

잡담입니다. 구문과 경험 기억입니다.

옛날 방송과 영화는 표준말 일색이었다고 하져어어어어.. 규정을 땅땅땅 만들어서 그걸 지켜야 했대요. 옛날 프랑스처럼[각주:1], 일본처럼[각주:2]. 그건 시대의 요구랄까, 좋은 점도 있었어요. 의사소통문제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광복 후 일본말 어휘와 용법 등 잔재를 쓸어내고 우리말을 부활시켜 대체하고 현대 한국어로 발전시켜 보급하는 과정을 빠르게 하려면 필요했겠죠. 

그게 80~90년대를 지나가며 삼남지방 사투리가 방송과 영화에 본격적으로 "허용"된 모양이고, 강원도말, 경상도말, 전라도말, 충청도말, 이북말씨가 일상드라마와 코미디에 들어왔습니다. 그 중 태백산맥-소백산맥을 경계로 동쪽과 서쪽말이 크게 다르고 서울에서 멀어 서울시청자에게 이질적이니까 주로 추풍령동남쪽 경상도말과 그보단 산이 낮은 노령산맥이남 전라도말 그 둘이 두드러졌던 것 같아요.[각주:3]

충청도말은 남부는 전북말과 비슷하고(충남 일부는 행정구역상 원래 전북이었죠. 충남과 전북은 가로막는 지형도 별로 없고 사람많이 사는 해안지방은 바다로 통하고. 그래서 전북말씨면서 충남토박이인 경우는 흔합니다), 경기도말은 원래 표준말과 가까웠고, 사대문안 진짜 서울말은 휴전선이 생긴 이래 TV나 입으로 토박이말을 처음 듣는 삼남지방 사람은 오히려 북한쪽말인가하고 생각할 만큼 듣기 드물어진 것 같고.. "여기는 원래 서울도 아니었어, 너흰 다 촌놈(나도 촌놈)"이라며 농을 하던 어릴 적 선생님 말씀마따나. 특히 사대문안인 장충동, 명륜동쯤 되면 개발시대에 들어와서도 사투리쓰는 영호남출신에 대한 놀림은 심지어 아이들끼리도 있었습니다.

그런 바탕에서 서울,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에 짧아도 사 년 정도씩은 살아본 제 생각에, 이상하게 보이는 게 있어요.

인터넷에서 동도사투리와 서도사투리를 왜곡하는 사람들.


1) 일부러 잘못 쓰는 사람들과 그런 걸 받아들여 고의든 무지의 소치든 잘못 쓰는 사람들.

그 중 하나인데,

동네마다 다르고 받아쓰기의 표준같은 건 없으니까 적는 사람 맘대로겠지만,
제 기준으론 "머가↗ 그↑르(ㄹ)케↘ 어↑리운(ㅸㅡㄴ)↘ 기↘고→?" 쯤입니다. 적어도 "노"는 아닙니다. 저건 억지.[각주:4] 

조금 검색해 보니, 저 정도는 그래도 타지역 사람이 모르고 흉내냈나 싶은 정도고, 노골적으로 갖다붙인 "참말로" 한심한 경우 많더군요. 말이 더 필요없습니다. 얘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러나 모르겠어요. 말을 잘못 쓰는 습관을 일부러 들이면 결국 그 사람의 생각과 생활에 해가 됩니다.

그런데, 요즘은 온오프라인 매체 여기저기서 이상하게 느껴질 만큼 눈에 띄어 거슬립니다. 전에 몇몇 대형 언론사에서 어디의 '오염된 이미지'를 사용해 보도했다가 소동난 적이 몇 번 있었죠? 그 일이 생각날 만큼, 어쩌면 모르고 쓰는 사람이 늘 정도로 '가짜사투리' 중 하나가 되어 스며들어버렸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치 세포 유전자속에 끼어들어가버린 바이러스유전자처럼. 모르고 사용하고 모르고 듣는다면 그 점에서는 유포자의 의도가 통하지 않은 것이고, 다른 비속어와 은어처럼 원래의미와 동떨어져버린 것이라 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좋지 않은 쪽 오염이니 역시 좋지 않네요. 눈에 띌 때마다 짜증이 확.

 

2) 그런 말이 보인다 해서 아예 그 말 자체를 '삭제'하려 드는 무지한 타지방 일부 사람들.

예를 들어 "~노./-노?/-노!"는 얼마든지 쓰는 말이고, 있는 척 말하면 다양한 용법이 있어요. 잘 안 쓰는 용도도 있지만 쓴다고 해서 이상하지 않은 경우도 많죠. 토박이나 그쪽 말을 많이 들어본 사람은 있어서 자연스런/쓸 수도 있는 용도와 '절대 안 쓰는 용도'를 잘 압니다. 경상도사람이나 서울경기사람은 전라도사투리라면 다 똑같은 줄 알지만 전주와 광주, 그리고 그 도시들을 둘러싼 군지역이 원래 사투리가 제각각이라고들 하던데, 전라도사람이나 서울경기사람이 경상도사투리가 다 같다 생각할 지 몰라도 대구와 부산, 그리고 그 도시들을 둘러싼 군지역도 마찬가지로 다릅니다. 그런데 저걸 가끔 쓴다고 덮어놓고 이지매하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무지한 짓입니다. 요즘은 제주도조차 신세대는 토착방언이 죽어가고 있다고 할 정도니까 모르는 사람도 많지만, 휘휘 저어 설탕물타듯 한 번에 균일하게 되진 않습니다. 표준 전라도방언이 없듯이 표준 경상도방언도 없습니다.

<우째 편지가 이리 많> 1994년에 청와대에서 펴낸 책 이름입니다. 


에드가 앨런 포우의 <모르그가 살인 사건>에서, 유인원이 내는 소리를 들은 이웃사람들은 각각 자기가 모르는 외국어라고 단정합니다.[각주:5] 요즘 버전으로, '내가 모르는 외국어로 저놈이 내게 욕을 한 경우'처럼 생각하고는 "내 앞에서 알아듣지 못하는 외국어 쓰지 마라"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거 괜찮나요. 알아듣지 못할 말, 또는 은어로 욕하는 놈은 당연히 나쁜 놈입니다만, 초면인 사람에게 자기가 외국어나 은어라고 생각하는 말을 들었다고 화부터 내는 놈도 정상은 아닐 겁니다.


1. 쓸데없이 시덥지않은 말장난해서 남신경긁지 말자.

2. 과민반응해서 트롤을 기쁘게 하고 적을 만들지 말자.

3. 국어가 무슨 죄냐. 할 말 있으면 바로 해라.



추가글)

여러 번 다듬은 이 글을 처음 적고 나서, 친척 결혼식에 참석하느라 지역에 간 김에 유심히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저도 의무교육부터 학교시절을 서울에서 보내서 사실상 서울사람으로서 컸기 때문에. 어디서 나셨는 지는 여쭤보지 않았지만 거기 모인 사람기준으로 40~50년대생 어르신들은, 인터넷 광대들마냥 말끝마다 달진 않아도, "~노'를 편하게 쓰시더군요(물론 더 남쪽도 쓸 겁니다. 위에 인용한 책의 주인공인 YS는 거제도 출신이라면서요?). 역시 제가 착각한 게 아니었습니다. 인터넷 외눈박이들이 완장질하는 바람에 내가 잘못 생각한 줄 알았으니.. 참 나. 샘플(?)이 많지 않아 집계라고까진 안하겠지만 적어도 현대정치사와는 타임라인이 무관하다는 사실 정도는 알 수 있었습니다.[각주:6]

전라도 안 살아본 놈들/ 자기 시군과 서울말만 아는 놈들이 전라도 사투리를 정의해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는 것처럼, 경상도 안 살아본 놈들/ 자기 시군과 서울말만 아는 놈들이 경상도 사투리를 멋대로 정의해 물의를 일으킨 겁니다.[각주:7] 한심한 인터넷 가짜들과 그들의 깃발따라 몰려다니며 린치하는 골빈 쓰레기들. 동도 서도 할 것 없이 지역망신은 그런 초라니와 완장, 광대들이 시킵니다. 인터넷 선동가들에게 몸을 맡기지 마시고 스스로 생각하세요.


또 추가글)

이제는 "-누"를 가지고 장난치는 놈들이 많아졌네요. 아 정말 짜증!


  1. 프랑스는 초기 왕조가 성립한 이래 계속 영토를 확장하면서, 중앙정부의 권력이 미치는 지방 토착어를 배제하고 파리말을 보급했습니다. 그게 근 20세기까지 계속되었고, 그런 공세가 영토확장이 일단락된 20세기 이후 요즘은 반대로 수세에 몰려서, 인터넷과 영어의 공세에 대항하는 프랑스어 보존 운동으로 이어지게 되었다고 해도 됩니다. [본문으로]
  2. 근대 국가주의(민족주의)의 기본은 하나의 공용어니까유. 러시아든 중국이든 어디든. 영방국가의 전통이 지방자치로 살아남은 독일이나 원래 스파게티인 이탈리아가 좀 다를 뿐. [본문으로]
  3. 대전에서 몇 년 살아보고 말인데, 충청도말은 일단 지역이 차령산맥 위냐 아래냐로 구별하면 비슷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말은 잘 모르겠지만 충북도 동북 지역은 충남에서 바라보면 왠지 강원도 영서지방느낌. 서울기준으로 치면 철원, 춘천, 원주 정도. 거기서 보면 대전서남쪽은 또 전북이나 마찬가지처럼 느끼겠죠. [본문으로]
  4. "뭘 그렇게 어렵게 했노?"같은 식이면 모를까. [본문으로]
  5. 말이 나왔으니 하는 얘긴데, 사투리싸움의 끝판승자는 부모가 서울이주한 '가짜서울사람'일 겁니다. 서울 안 가본 사람이 말로 이긴다고, 진짜 서울토박이가 져요. 말도 특이하고 사람수도 적으니까 [본문으로]
  6. 이때는 어르신들 스마트폰보급률이 높을 때도 아니었습니다. [본문으로]
  7. 사실 그 서울말조차 제대로 된 사대문안 서울말을 쓰는 사람들은 머릿수가 훨씬많은 "표준말교육받은 지방 촌놈의 자식들"에게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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