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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역사/사회/자연과학] 철학 이야기 - 윌 듀란트, 한 권 안에 많은 이야기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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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역사/사회/자연과학] 철학 이야기 - 윌 듀란트, 한 권 안에 많은 이야기

알림: 이 글은 원래 다른 블로그에 작성한 글이었으나, 티스토리의 이번 이벤트에 참가하기 위해 도서리뷰 블로그를 옮겨 오기로 하고 여기로 이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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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철학이야기
윌 듀란트 저/황문수 역 | 고려대학교출판부 | 1998년 10월
 
(당시는 저런 조판이 아니고, A5[A4라고 잘못 적었네요. 고쳤습니다]크기의 갱지같은 누런 지질을 쓴 판형으로 글자는 작았지만 휴대하면서 보기 좋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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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들어가면 누구나 사회과학 동아리에 이름만이라도 들던 때가 있었다. 활동은 차치하고라도 새내기가 되면 어딘가에 소속을 가지는 것이 당연했고, 선배들은 상견례가 지나자마자 후배 모집에 나섰다. 그렇게 들어가면 첫 학기에 반드시 거치는 댓거리가 바로 '철학 개론'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면도 있다. 철학관련 과목은 교양과정으로 거의 반드시 수강하곤 했거든. 물론, 동아리에서 배우는 '철학'이란 과목으로서의 철학이 아니라 '열정'과 '맑시즘'을 이어주는 다리를 의미했다. 헤겔주의를 배우고 가기에 힘드니까 일단 새 봄에는 현실에서 직접 원전으로 들어가고(속성 코스) 본격적인 철학적 바탕은 연말쯤 되면 겨울 댓거리감이 되는 식(심화 코스)이었다.  '맑시즘'이라곤 해도 그 수준에서 그건 '사회개혁'을 의미하고 정규 교육으로 배우지 않은 다른 한 구석을 맛보는 뜻이 있었다. 베버가 했다는 유명한 말처럼, 젊어서 관심두지 않으면 때가 없는 것에 들어가니까 헛된 것이라고 몰아세울 수만은 없겠지.

공무원시험 준비하기에는 새내기들이 가장 좋을 때라고는 한다만 그래도 윤리과목의 철학사를 상기하며 저런 내용(사실 상당히 고급 바탕을 깔아야 하는)을 공부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래서 한해는 배우고 잠깐동안 가르친다고 했지만 결국 그 시간을 통해 교양 바탕을 얻은 것 같지는 않았다. 어디까지나 '활동가'의 정신무장이라는 보조적인 성격이 강했으니까. 그점에서 70년대생들은 사고는 신식이라도 하는 방식은 자기들을 가르친(그래서 그 방식이 타파할 대상으로 전락한) 사회 선배들과 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다. 사실 다들 알고는 있었지만 '철학자'보다 '열사'가 필요했던 결과 그리 된 것 같다.

그러나, 난 절대로 당시를 비난할만큼 적극적인 사람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작은 블랙홀처럼 터져버릴 때까지 지식을 흡수하기만 하던 방관자였다. 가까이서 관찰하고, 사람들 사이에 있었지만, 보통의 학생이 하는 이상의 뭔가를 하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작은 목소리로 당시를 말할 수는 있어도 열정으로 살아가며 사회와 상호작용한 선후배 동기들의 방식을 책할 권리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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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설이 무척 길었는데, 이 책을 저런 배경에서 만났기 때문에 꼭 적고 싶었다. 일반인을 위한 철학 개론서로서 무척 재미있게 봤고, 그 뒤로 몇 년간 어디에 살든 가지고 다녔다. 고대부터 현대까지이며, 각 시대를 대표하는 철학자들의 인생에 얽힌 사건, 그리고 대표적인 저서를 해설하며 주요 구절을 해설해준다. 교보문고에서 뒤적거린 국내외 철학개론서 중에 가장 좋은 책이고 많은 내용을 깊이있게 담고 있으면서도 쉽게 전개해나가고 있다. 전체적으로 두꺼운 책이지만 각 장이 철학자 한 사람으로 완결되기 때문에 나눠 읽으면 분량도 부담도 적다. 별로 배운 것 없고 배웠다 해도 다 잊어버린 내게는 좋은 know-where로 남아있다.

책의 편제는 고대 -> 현대로 밟아 오면서 철학자 한 사람을 챕터 하나에 할당했다.
그리고, 먼저 그 철학자가 살던 시대를 조망하고
그 철학자의 일생을 보여준다. 여기서 그 사람의 인생과 철학의 관계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의 철학을 그 사람이 지은 저서를 한 권씩 들어 가며, 중요한 구절을 예시하면서
그 철학자의 이야기를 풀어 가는 식이다.

예를 들어, 스피노자를 보자.
스피노자론은 유태인의 디아스포라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유럽의 변화와 레콩키스타, 스피노자 직전의 유럽 유태인 사회의 변화를 서술하고, 이어 스피노자 본인의 개인사로 들어간다. 그렇게 하여 독자는 스피노자라는 사람이 어떻게 해서 그런 철학을 갖게 되었는 지를 이해하고, 그 사람에 대해 인간적인 감정을 갖게 된다. 그런 연후에 스피노자의 저서를 한 권 한 권 저자와 함께 곱씹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꽤 어렵고 딱딱할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쇼펜하우어편을 볼까?
쇼펜하우어의 가정사는 모친과의 투쟁사였다고 봐도 된다. 그래서 이 염세적인 철학자가 자신의 대표작에서 왜 그렇게 싱글족을 찬양하고 여성을 비하했는지를, 그의 개인사를 읽으며 독자는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염세적이었으면서도 염세적인 만큼 현실에 기대를 갖지 않았던지, 빚을 받아내는 지독함이라든가 주식 투자를 하는 의의의 모습을 보고 놀라고, 팁을 주는 방법을 읽으며 웃기도 한다.

볼테르편에서는 서유럽 전체를 농단하는 주인공의 프랑스적인 대담함, 그리고 자유 분방한 인생편이 그의 철학보다 더 재미있게 다가올 것이다.


매우 매우.. consise하달까? 이 책을 읽고 나서, 내가 사 모았던 수많은 새내기용 철학 입문서는 모두 쓰레기통에 버려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런 책은 어디 가서 읽었다고 말하기도 부끄러운 책.

이 책의 다른 장점은 철학이 철학으로서 떨어져 생기를 잃지 않고
저런 편제 안에서 서술하다 보니, 역사 속에 살아 숨쉬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21세기에 플라톤의 저서를 글자 그대로 읽어서 무엇하겠나?
철학은 시대를 벗어날 수 없고, 시대 안에서 숨쉬며, 시대와 함께 읽어야 맛이 나는 법이다.


20세기 초에 만들어진 책이므로 원문 저작권은 풀렸을테니 e-text로 구할 수 있을 것이다. 한글판은 당연히 저작권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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