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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모토 이소로쿠(태평양전쟁)을 비유하면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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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모토 이소로쿠(태평양전쟁)을 비유하면

서로 대립하는 A파벌과 J파벌이 있는데,
A파벌보다 훨씬 약한 J파벌 소속이면서
J파벌의 1번 돌격대장으로 있으면서,

평소 A파벌과 승산없는 싸움은 안 하는 게 좋다고 말해 일각에서 상식인으로 불리던 사람이지만,
J파벌내 분위기가 싸움으로 기울어지자
그럼 확실하게 이겨서 본때를 보여주고 협상으로 끌어내야 한다며 제시한 계획이,

A파벌 두목의 셋째 아들을 거시기해버리자는 안을 내고,

이걸 고집피워 밀어붙인 사람.

그 결과 A파벌에서는 J파벌을 박살낸 다음에 항복받기로 결정하고, 협상따위 절대 없다며 사정없이 쳐들어오는 답없는 상황을 초래한 사람.



* 일본 해군만이 아니라 일본 육군도 포함해, 이쪽에서는 중요한 대목마다 외교를 박살낸 일본 군부의 행동을 읽는 것이 너무 재미있다.^^  강건너 불구경이라서 그렇지만.


* 이 산본56의 큰 잘못이 몇 있는데
ㅡ 진주만이 아니면 나 잘라라[각주:1] 고집불통
ㅡ 미드웨이가 아니면 나 잘라라 고집불통
ㅡ 겐다 미노루 중용
ㅡ 나구모의 작전을 제약해 공습에 취약하게 만든 것.[각주:2]


  1. 연합함대 사렁장관인 야마모토 이소로쿠의 상관은 군령부 총장인 나가노 오사미였다.

    그런데 나가노는 야마모토를 총애했지만 통제하지는 못해서, 군령부 총장이 된 뒤로는 매번 맥없이 끌려다녔다고 한다. [본문으로]

  2. 미드웨이에서 폭탄과 어뢰를 바꿔끼다 얻어터진 소동의 원인은 1 아먀모토 이소로쿠, 2 겐다 미노루다.
    1은 2회 연속 폭격 필요성을 누구나 예상했지만 무식한 야마모토가 현장의 함재기 운용 방식을 무시하고 대기하란 바람에 나구모가 그런 상황에 몰렸다(나구모보다는 야마모토가 항공작전을 훨씬 잘 알 만한 경력을 가졌지만, 미드웨이때 지시를 보면 역시 구세대였고, 겐다 등 좌관급에게 많이 의지했다. 야마모토 자신도 러일전쟁 참전자) .
    2는 야마모토가 그런 엿같은 명령을 하게 만든 계기가 된 허풍을 떤 장본인이자 야마모토와 나구모 밑에서 능력보다 크게 출세해 호가호위하다 작전을 망친 자가 겐다 미노루였기 때문. 겐다는 진주만공습계획때 이미 주인이 목줄당기지 않으면 어디까지나 덤벼드는 치와와같은 사람이었고(해군의 츠지 마사노부라고 불러도 될, 상관들이 눈여겨볼 만한 재기는 있지만 논파될 것 같으면 우기거나 거짓말하고 아랫사람을 정신력 논리로 찍어누르는 자였다), 그는 진주만의 성공에 힘입어 발언권이 더 커진 미드웨이때도 그렇게 했다가 실패의 주역이 됐다. 그리고 진주만과 미드웨이의 사례는 '계획을 너무 세밀하게 짜지만 우발작전에 약한 일본인'이란 말을 그대로 떠올리게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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