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수단으로부터의 노동자의 분리' - 막스 베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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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자가속기가 됐든 레이저 현미경이 됐든 CNC가공머신이 됐든 말이지.[각주:1] 옛날에도 피라미드에서 벽돌끌던 노동자들은 자기 생산수단이란 건 없었으니, 이건 시대보단 규모의 문제일 지도 모르겠다. 컴퓨터와 프린터와 3D프린터와 개인소유 로봇의 보급과[각주:2], 이제 개인수준까지 내려간 주문생산이 노동자에게 생산수단을 돌려줄 수 있을까?[각주:3] 복잡한 요즘 세상에 그런다 해도 일부에 그치겠지만[각주:4] 그 "일부"가 궁금하다.


그런데, 저 제목 말이야. 우리말인데 일문 직역체(~の ~の ~), 영문 직역체( ~ of ~ from ~)같다. [각주:5]


제목에 쓴 문장은, 칼 맑스가 한 말이 아님. 막스 베버의 강연록이라는, "직업으로서의 학문"(이상률 역, 문예출판사 간행)에서 발췌.


(..) 그런데 학문의 폭넓은 분야에서 대학제도의 최근 발전이 미국 제도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분명하게 관찰할 수 있습니다. (독일의) 의학이나 자연과학의 큰 연구소들은 '국가자본주의'의 기업들입니다. 이들 기업은 대규모의 경영수단이 없이는 관리될 수 없습니다. 자본주의적 경영이 나타나는 곳이라면 어느 곳에서나 그러한 바와 같이, 그곳에서도 똑같은 상황이 일어나는데, 그것은 '생산수단으로부터의 노동자의 분리'입니다. 


노동자 - 즉 조교 - 는 그 자유로운 처분권이 국가에게 있는 노동수단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는 공장의 종업원처럼 연구소장에게 예속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연구소장은 그 연구소가 '자신의' 연구소라고 완전히 선의에서 생각하면서 연구소를 관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독일 대학의) 조교의 위치는 흔히 모든 '프롤레타리아와 같은' 위치 내지는 미국 대학의 조교의 위치와 비슷합니다.



약 1세기 남짓 전에 나온 문서의 프롤로그인데,

어쩌면 요즘 대학원 진학을 생각하는 사람도 읽어볼 만 하겠다.

대학원에 진학하는 목적을 강사와 교수가 되는 데 둔 사람은 읽어보면 좋을 것 같은 내용이 있네(학부입학할 때 면접보던 교수님이 한 얘기가 생각났고, 입학식때 대학 총장이 할 만 한 얘기가 저기 나오네 그랴). 세상에! 어째서 지금 난 막스 베버와 후쿠자와 유키치가 쓴 책을 읽으며 어? 비슷하네?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인가. 이유를 찾으면 하나는 우리 나라가 변방이기 때문일 테고[각주:6], 다른 하나는 어느 나라든 간에 학계가 원래 이런 걸 잘 바꾸지 않는, 관성이 아주 강한 곳이기 때문일 지도 모르겠다.



* 원문 자체가 분량이 얼마 안 되는 만큼, 주석이 많은 책이다. 직업으로서의 학문+직업으로서의 정치 합본인 범우문고 판본이 제일 작고 짧지만 글쎄.. 원본 내용이 적어 축약하진 않았을 것 같긴 하다만, 확인해봐야겠다. 일단 학문, 정치 모두 문예출판사본과 범우사본이 다 전자책으로 나와 있는데, 범우사본은 옛날에 읽고 지나갔고 문예출판사본은 7월에 10년 대여판으로 나와서 사 두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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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런데, 생산수단이라 함은, 맑스의 그런 이야기말고 요즘 개념으로는, "회사 조직"자체도 생산수단이 아닐까?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면 현대에 '생산수단을 소유한 사람'은 주식회사의 의결권을 가진 사람이거나 개인사업자일까? [본문으로]
  2. 영화 <아이언맨>을 보고 내가(그리고 아마 다른 사람들도) 기대한 것은, 언젠가는 일반 중산층 가정에서도 저것의 양산형을 사유화하고, 서민층에서는 적어도 시분할로 빌려 쓸 수 있게 되지 않겠냐는 것이다. 물론, 1벌당 1조원짜리 기계슈트를 만들고 개인용 원자로와 입자가속기를 가지고 노는 건 불가능하지만. [본문으로]
  3. 이 질문 자체가 내가 어리석어 하는 소리일 수 있다. 머릿속에 든 전문지식과 개인 소유 컴퓨터와 자율로봇과 승용차와 레미콘 트럭과 편의점 점포가, 도끼와 톱과 삽과 망치와 다른 점은? [본문으로]
  4. 집에서 개인실험하고 연구해 투고하면.. 특허청에서 일하며 논문을 냈다는 아인슈타인에게 물어봐야지 [본문으로]
  5. 이건 여담인데.. 번역이라니까 말인데, 이것도 어차피 일본어에서 왔을 "노동자"의 원문을 가식없이 번역하면 "날품팔이"가 되겠지. 왜냐 하면 모두가 언급할 중심이 되는 문헌, 맑스의 <자본론>에서 노동자란 자신의 몸뚱이밖에 가진 게 없는 개인이니까. 그 점에서는, '근로자'라는 말이 비록 가식적인 면이 있더라도 어감이 낫다. 세상 옷갖 것의 명칭을 순화해가는 세상이다. 그렇게 오래된 "처녀비행(maiden flight)"이란 말을 공식 기록에 쓰면 태클이 들어오는 요즘이다.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이란 직역이 싫은 사람도 있겠지만, 그래도 거의 이백 년이 다 되어 가는 오래 전, 산업혁명 초기에 만든 정의가 녹아 있는 '노동자'는 지금 세상에는 슬슬 안 맞는 것 같아. OO노동자라고 앞에 접두어를 덧붙여 쓰긴 하지만. [본문으로]
  6. 미국 영어는 영국 영어보다, 영어라는 언어의 오래 전 특징을 보존하고 있다고 하더라.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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