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용 텍스트 에디터..

잡담 잡담.. 진짜 잡담.

옛날에, 그러니까 삼국지 3하고 놀 때.. 파스칼로 텍스트 에디터를 만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1단계는 당시 구할 수 있던 소스와 출판된 책하고는 다르게, 도스 메모리 640kB를 되도록 다 써서 큰 파일을 읽고 쓸 수 있는 영문 에디터를 만드는 것이었는데, 어찌어찌 했어요. 구할 수 있는 소스에선 링크드 리스트를 써서 한 줄을 변수 하나에 할당했는데, 그건 한 줄이 화면크기로 고정돼있는 마음에 안 들어서 메모리를 그냥 통짜로 써서 그걸 잇고 이어서 용량제한은 해결. 터보파스칼 5.5는 포인터가 없지만 도스메모리 한계는 뻔하기 때문에 무한히 늘릴 필요는 없었죠. 변수 하나 최대크기가 64kB니까 그걸 몇 개 확보해 이었는데 메모리확보실패할 때 에러처린 어떻게 했는지 지금은 생각이 안 나네요. 그래서 다룰 수 있는 전체 사이즈는 대충 400-500kB정도까지늘어남. 문서폭(width) 재지정, 4가지 정렬방식, 현재위치표시, 찾기같은 기본적인 건 구현했고 풀다운 메뉴도 만들고.. 물론 영문 텍스트모드에서. 핫키를 생각할 수 있는 조합 대부분을 미리 집어넣느라고 소스가 엄청 길어지고.. 도스로 잠시 나왔다 들어가는 기능도 라이브러리를 구해서 집어넣어 구현하고..

2단계가 한글이었는데, 오토마타를 만드느라 종이에 많이 끄적댔습니다. 한글 입력기 자체는 MSX로 한글메모장만들겠다고 할 때 짜봤기 때문에(어셈블리어-VDP커맨드-를 안 쓰면 스크린7에서 좌절스런 출력, 스크롤속력이 나오는 바람에, 기계어 겨우 입문한 실력이라 그만뒀지만) 어렵진 않았는데, 제멋대로 꼼수넣는 게 재미있었네요(예를 들어, 문장의 처음에 자음없이 모음을 치면 "ㅇ"이 먼저 입력된 걸로 간주해서, "ㅏ"만 치면 "아"를 표시한다든가). 그 뒤에 당시 PC통신에 돌던 아래한글 글꼴을 받아 그것 사용법을 파스칼로 바꿔서 넣고.. 그렇게 대충 만들어 놀다가 윤곽선폰트를 쓰는 아래한글 2.0이 프린터 번들로 들어와서 그걸 써보고는 재미가 떨어져서 거기서 미완성으로 그만뒀네요. 그 때쯤 PC통신을 제대로 하면서 좋은 분들이 공개한 라이브러리를 구해 조합하면 조잡한 제것보다 훨씬 좋은 걸 쉽게 만들 수 있게 되니 흥미가 없어지기도 했습니다.

저작권개념이 없을 때라 터보파스칼 5.5는 컴퓨터살 때 가게 아저씨가 끼워준 것이었고, 터보파스칼6.0을 구한 뒤에는 OOP개념이 조금 들어간 코드와 인라인 어셈블리를 신기하게 여기고 좀 써먹었지만, 그 때쯤 흥미가 없어져서.. 다만 몇 년 뒤에, 조금 배우겠다고 비주얼C++ 책을 들었을 때도 가장 관심있게 본 것은 에디터 만들기였습니다. 책 자체가 입문용이었지만 정말 싱거울 정도로 양이 적고 쉬워서, 도스때 내가 이런 거 만들려고 끙끙댔던가하고 웃었습니다. ^^

리눅스에 관심가지면서 스크립트도 몇 개 배우고 그걸로 게시판소스를 고치고 놀다가 실력없고 실속없는 취미인 채로 영영 끝났는데.. 역시 사람에게 가장 큰 재산은 시간, 그것도 되도록 어릴 적 시간입니다. 놀든 공부하든 알바하든 뭐든 나이를 더 먹은 뒤보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할 수 있고 그 뒤의 선택지도 넓으니 말입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나 죽으면 좋은 곳에 가도록 빌어주게"하는 조건으로 프로그램을 배포한 어느 할아버지의 마음을 알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