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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의도였을 정책이 악한 결과로 나온 본문

기술과 유행/인공지능-2

선한 의도였을 정책이 악한 결과로 나온

시작하는 이야기는, 이젠 가물가물해서 사실관계는 조금 틀릴 수 있는 얘기다. 그러니 여담(=잡담)으로만 읽어주면 감사하겠다.

 

이명박 1년차쯤이던가, (내가 아는 곳은 이공계) 국책연구기관의 연구원 채용이 줄었다 해서 원성이 컸던 적이 있다. 아는 분 한 사람이 마침 그 때 직장을 잡아야 했는데, 지원하려고 마음먹었던 기관들 분위기가 싹 바뀌어버려서 그 때 대통령을 엄청 욕했던 것이 생각난다. 화내는 것은 당연한 권리였다. 그랬는데.. 알고 보니 노무현 말년에 통과시킨 법이 이명박때 시행되면서 그리 된 것이었다. 그리고 이명박때도 그 쪽으로 다른 정책이 더 시행됐다.[각주:1] 그리고 그 둘은 상승효과를 일으켰다. 간단히 말해, 연구원 총원 관리를 하도록 하고, 인건비 총액 관리를 시켰다고 하는데, 연구조직과 인력을 방만하게 늘리지 말고 예산을 낭비하지 말고 효율적으로 쓰라는 의도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 결과는, 정규직은 제한에 걸리니 계약직을 뽑았고, 중견 인재를 붙잡으려면 연봉을 더 줘야 하니 계약직 임금은 올려주지 못했다더라.

 

그런 식으로 갔다는 뉴스를 본 적 있다. 

 

이런 경우를, 역대 어느 정부든 다른 시대에서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걸 뭐라고 부르더라...... 위의 사례에서는 어떻게 됐냐 하면, 그렇게 해서 한 십 년이 되어 가니 연구의 맥이 끊기게 생겼다, 기관의 역할이 위태롭다, 유능한 젊은 연구자가 들어오지 않는다.. 그랬다고 한다.


그리고 어제 이런 뉴스가 나왔다.

정부, 출연연구기관 '젊은 연구자' 집중 육성한다 - 연합뉴스

박사후연구원의 경우 연구과제를 마칠 때까지 일할 수 있도록 고용을 보장하는 '과제기반 테뉴어 제도'를 도입한다

정부를 넷 거치는 동안 시각 자체는 바뀌지 않고, 그저 예산 얼마 가감하며 "언 발에 오줌누기"하는 느낌. 뭔가 근본적으로 좋게 바꾸는 길이 있을 것 같은데.. 

 

 

 

그런데 재미(?)있게도, 이것은 바로 그 십 년 쯤 전,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 정부와 정부의 구조조정압력을 받던 상장대기업들이 한 조치를 떠올리게 하는 데가 있다.

 

당시 신정부는 IMF의 압력과 자신들의 경제관에 입각해, 상장기업 부채비율[각주:2]을 낮추는 데 총력을 기울였고[각주:3], 극에 달했던 대기업 문어발을 자르라는 의도였던 지 구조조정을 장려했다.[각주:1]

 

그 때 회사들이 한 일은[각주:4] 본사업을 안 할 수는 없으니까 아웃소싱[각주:5]이었다. 회사내 사업부를 잘라내고, 한 공장이라도 라인별로 직무별로 잘라내서, 회사의 원래 임원과 정규직 직원을 해고해 신설 사내하청업체의 사장과 직원으로 신분을 바꾸었고 시설을 임대하고 용역 일감을 주는 식으로 해서 하청했다.[각주:6] 상장기업의 임직원에서 비상장 중소기업 임직원이 되면서 호봉도 리셋되거나 없어졌으니 인건비는 떨어지고, 체면을 차리거나 대기업에 적용되는 법규를 지켜 노동환경과 고용조건을 개선하지도 않고, 원청은 직원수와 경영 리스크를 줄였다. 

 

그리고 이런 관계기 때문에, "장부가져오세요. 올해 많이 벌었네요? 내년은 계약을 타이트하게 해서 사장님 회사 영업이익률은 1%로 맞춥시다. / 올해 적자났네요? 사장 계속 하고 싶으면 비용절감하세요. 사장님 법인이니까 본사 지원은 없습니다.[각주:2] / 아, 내후년이면 우리 이사님이 퇴직하시니까 사장님은 주변정리하시고요. 사장님 법인이 폐업하면 새 법인이 직원을 인수인계할 겁니다. / 본사의 사업 방침이 바뀌었습니다. 사장님 회사가 하던 업무는 없어지니까 폐업하시고, 책임지고 직원 정리해주세요." 이런 말이 자연스럽게 오갔다. [각주:3]

 

그리고 남은 본사는 이익이 많아지니 정직원 연봉과 주주 배당을 더 줄 수 있게 되었고, 위기극복기업이라며 정부의 칭찬을 받았다. 그리고 계약직화, 파견직화였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The road to hell is paved with good intentions)."[각주:7] 이 말이 선의를 포기할 이유는 될 수 없다. 하지만, 정책이 의도와 다른 결과를 낸 예는 수없이 많다. "주식투자는 대응의 영역"이라는 말도 있지만, "정책입안자는 판을 짜는 사람"이기도 하기 떄문에 그 말로 변명이 다 될 수 없다. 영문 위키백과에 따르면, 저 경구의 다른 말은, "지옥은 좋은 취지로 가득 차 있지만 천국은 좋은 결과물로 가득 차 있다(Hell is full of good meanings, but heaven is full of good works)"라고 한다. 보다 노골적인 말.

 

시행착오라면 시행착오일 이런 문제를, 인공지능 정책 보좌관은 얼마나 줄여줄 수 있을까? IBM 왓슨은 인간 질병만이 아니라 국가정책도 조언할 수 있을 것이며, 1만 쪽 짜리 법령집을 읽는 데 몇 시간 걸리지 않을 것이며[각주:8], 트럭으로 실어 국정감사장에 나르는 문서들, 국회의원들이 거의 안 본다는 그걸 다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요즘 보도되는 기사를 보면, 외국 법률회사들은 이미 이런 식으로, 고객회사가 제공한 자료 수 만 쪽을 입력한 다음 질문하는 식으로 인공지능을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일단은 의원입법, 정부입법으로 만들어지는 법안이 상정되기 전에, 의원과 부처 차원에서 인공지능이 입법조사처를 대신하는 보좌관 역할을 하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겠지? 의사결정이 아니라 의사결정을 돕는 자리고 노동시장이 있는 것도 아니라 자동화하는 데 저항은 없을 것이다.[각주:9] 새 법이 헌법이나 기존 법령과 상충하는 데가 있는지, 시뮬레이트해서 어떤 결과를 빚을 것인지 보여줄 수 있을 것이며, 주어진 과제에 대해 과거 사례를 검색, 조합해 적당한 해법을 추천할 수 있을 것이다.(쉽게 말해, 영화 <아이언맨>에 등장하는 AI 자비스를 국회의원 개인에게 보좌관 1명분으로 쳐서 붙여 주자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의원발의 법안이 질이 크게 올라갈 것이고,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예습 안 해 온 국회의원들의 추태를 줄이고 논의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을 지도 모르고, 어렵게 본회의를 통과한 법안이 실로 작은 문안 실수때문에 엉망이 되고 시행령에 더 의존하는 문제도 어떻게 할 수 있을 것이다.

 

 

  1. 당연히, 원래 법조인출신인 노 전 대통령이 연구조직경영을 알아서 이렇게 하자하고 앞장섰을 리는 없고 그저 그 시기에 통과된 법률 중 하나라 칠 수 있다. MB도 마찬가지고 세계금융위기로 재정을 추스려야 하던 때의 연장선상에서 나왔다고 볼 수도 있다. [본문으로]
  2. 경기확장기에 레버리지를 높이는(빚을 얻어 사업을 키우는) 건 당연했지만, 1998년을 전후한 때는 그런 시기가 아니었다. 그런데 IMF의 강요를 받아들이면서 국가적으로 손해를 많이 봤고 대량해고와 자산가치 폭락으로 국민의 고통도 심해서, 그 전 사이클처럼 버티고 우리 정부가 주도해서 구조조정하며 말레이시아처럼 갔어야 했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고, 다 지난 뒤에 IMF에서는 한국에 개입하며 얻은 교훈을 넣어 사알짝 반성하는 둥 마는 둥 하는 문서로 발간하기도 했다. 그래서인 지 십 년 뒤 그리스에서, 국제채권기관들은 꽤나 유화적으로 그리스 정부를 봐줬다(유럽 문화의 정신적 원류라는 조상님 음덕을 못난 자손들이 봤다고까지 했다). [본문으로]
  3. 업종불문하고 강요하는 바람에, 해운업에 암덩어리를 심은 게 그 때. 부채비율이 무조건 낮아야 한다는 주장은 가정경제수준 이야기다. 기업경영으로 가면 어디까지나 케바케. 그 정책의 결과, 바로 몇 년 뒤 국제경기가 풀릴 때, 외국과 조세피난처에 근거를 둔 한국인 신흥 재력가들이 출현했다. [본문으로]
  4. 대출을 조이니 빚을 갚아야 해서 사업장을 팔고 직원을 해고해야 했지만 [본문으로]
  5. 그런 걸 아웃소싱이라 부를 수 있는 지는 둘째치고.. [본문으로]
  6. '협력회사'라는 이름은 하청업체를 이르는 다른 말로, 현대차그룹이 먼저 사용했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읽은 적 있다. [본문으로]
  7. 링크 속 해설을 보면 알겠지만 조금씩 다른 뜻으로 쓰인다. [본문으로]
  8. 한 의원의 왓슨이 학습한 지식은 국회에 서비스되는 모든 왓슨에 업데이트된다. 인간 보좌관은 이렇게 못 한다! [본문으로]
  9. 인공지능을 투입하는 데 쌍수를 들어 환영할 사람들이 둘 있다. 공무원과 의사. 어지간한 단계까지 가기 전에는 이 두 분야에서는 인공지능의 보조역할만 해도 할 일이 산더미같고 지금 일손부족이 심하다. [본문으로]
  1. 말은 그럴 듯했다. 핵심사업만 남기고 나머지는 팔아 문어발하지말고 재무상황도 호전시키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정부돈 빨리 갚을 성의를 보이라는 단서도 붙었다. [본문으로]
  2. 가진 게 직원뿐인 하청에서 할 수 있는 비용절감이 무엇이 있겠는가? 결국 스톱워치까지 써가며 작업시간을 측정하고 동선을 개선하는 데까지 가는 것이었다. 만약 산재나면? 이 하청사장책임이다. IMF전이라면 그 공장의 공장장과 사장이 경찰서에 불려갔지만. [본문으로]
  3. 예전에 어느 분이 묘하게 리얼하다고 댓글다아주셨는데, 그럴 수밖에 없지요.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니까.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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