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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외주화한 사람들: AI는 어떻게 우리의 사고와 판단을 마비시키는가 (정재민, 김영주); 그리고 이 책에 대해 AI에게 물어보다 본문


기술과 유행/인공지능

생각을 외주화한 사람들: AI는 어떻게 우리의 사고와 판단을 마비시키는가 (정재민, 김영주); 그리고 이 책에 대해 AI에게 물어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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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안 쓰려고 인공지능쓰지 마라는 말.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20465903

 

생각을 외주화한 사람들 - 교보문고

“도둑맞은 집중력을 걱정할 시간에 이 책을 읽어라. 진짜 문제는 집중력이 아니라 판단력이다!” 역사상 처음으로 부모 세대보다 인지 능력이 낮아진 세대가 등장했다! ‘이 문장은 내 생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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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당신만 그런 게 아닙니다

 

생각을 외주화한 사람들 AI는 어떻게 우리의 사고와 판단을 마비시키는가

Part 1 속도와 무게에 짓눌리다

1장. 즉시성의 유혹_ 일단 보게 만드는 설계

진동은 생각보다 먼저 온다 | 즉시성이란 무엇인가 | 왜 우리는 즉시성에 취약한가 | 즉시성의 폐해는 세대를 초월한다 | 실천 전략: 즉시성의 유혹에서 벗어나는 방법 | 나가며: 판단이 먼저, 반응은 나중에 | 2장 예고: 시간을 압축하는 대가

2장. 시성비의 딜레마_ 시간을 압축한 만큼 지불하는 비용

2배속 세상, 0.8배속 이해 | 시성비를 좇는 사람들 | 왜 시성비에 빠져 드는가? | 시성비가 초래한 결과 | 실천 전략: 과속 사회에서 나를 지키는 방법 | 나가며: 경험은 압축할 수 없다 | 3장 예고: 과잉의 늪, 무엇을 덜어낼 것인가

3장. 과잉의 파도_ 선택을 마비시키는 정보 홍수

넘치는 정보, 멀어지는 결정 | 선택의 역설 | 이메일의 폭정 | 뉴스의 범람 | 왜 과잉에서 헤어나지 못하나? | 디지털 사재기와 구독 과잉 | 너무 많은 것에는 대가가 따른다 | 실천 전략: 선별하고 몰입하는 법 | 나가며: 적게, 깊게, 의도적으로 | 4장 예고: 더 많이 연결될수록 더 고립되는 이유

4장. 초연결의 굴레_ 연결되어 있지만 혼자인 사람들

수진의 하루: 비교의 덫 | 임계점을 넘은 연결 과부하 사회 | 연결의 역사: 고독에서 초연결까지 | 왜 우리는 초연결에 취약한가 | 초연결이 초래하는 결과 | 비교의 피로: 연결이 만든 새로운 고통 | 홀로 존재하지 못하는 사람들 | 실천 전략: 단절의 리터러시와 연결의 재설계 | 나가며: 통제권을 회복하라 | 5장 예고: 추천이 앗아간 취향의 주권

 

Part 2 생각을 설계당하다

5장. 추천의 덫_ 취향을 갉아먹는 필터

추천에 길들여지다 | ‘너무 많아서’ 그리고 ‘너무 믿어서’ | 친절한 알고리즘이 무서운 이유 | 음악은 알고리즘을 타고 | 알고리즘이 좁혀놓은 음악 세상 | 일상에 숨어 있는 추천의 그림자 | 알고리즘은 죽음까지 추천한다 | 알고리즘을 벗어나기 위한 ‘무작위’ 실험 | 실천 전략: 나의 세계를 확장하는 방법 | 나가며: 익숙함을 벗어나 낯선 즐거움으로 | 6장 예고: 편향의 미로 속으로

6장. 확증의 엔진_ 동의만 소비하는 편향된 뇌

‘나는 틀리지 않아’ | 우리의 뇌에 각인된 생존 회로 | 소셜미디어 시대의 확증 편향 | 편향은 어떻게 증폭되는가 | 분노가 만든 분열: 정서적 양극화 | 진실도 편향을 막진 못한다 | 편향의 감옥 탈출: 희망이 보인다? | 실천 전략: 확증의 엔진을 끄는 방법 | 나가며: 불편과 불안을 견디고 세상 밖으로 | 7장 예고: 인기의 착시

7장. 인기의 착시_ 숫자가 신뢰를 가장하는 순간

5점의 배신, 우리는 무엇을 먹은 걸까? | 플랫폼이 설계하고 조작이 부풀리는 ‘가짜 인기’ | 우리는 왜 별점을 맹신하는가 | 인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인기는 어떻게 ‘초정상 자극’이 되었나 | 우연이 필연으로 굳어지다 | 알고리즘이 만드는 인기 편향 | AI가 인기를 만든다 | 인기의 착시는 투표소 앞까지 진격했다 | 실천 전략: 인기에 현혹되지 않고 인기를 즐기는 방법 | 나가며: 숫자의 노예에서 경험의 주인으로 | 8장 예고: 최적화와 개인화의 덫

8장. 맞춤의 그림자_ 개인화라는 이름의 차별

“내 딸에게 무슨 짓을 한 겁니까?” | 디지털 흔적이 당신을 분류한다 | 맞춤형 차별: 보이지 않는 선택지들 | 차별의 자동화 | 분류되고, 범주화되고, 타깃이 되다 | 왜 이런 일이 끊임없이 반복되는가? | 실천 전략: 맞춤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는 방법 | 나가며: 분류되지 않을 권리 | 9장 예고: 가짜가 진실을 삼키는 곳, 가면의 공장

Part 3 그럴듯함에 흔들리다

9장. 가면의 공장_ 가짜 뉴스와 딥페이크

거짓은 권력만큼이나 오래된 도구다 | 가짜의 시대: 진실이 사라진 세상 | 정보 조작의 스펙트럼: 거짓의 다양한 얼굴 | 가면 공장의 작업 도구들 | 왜 우리는 가짜에 당하는가 | 세 가지 치명적인 상처 | 실천 전략: 가면을 벗기는 방법 | 나가며: 진실을 지키는 것은 우리의 몫 | 10장 예고: AI는 왜 그토록 당당하게 틀리는가

10장. 환각의 늪_ 자신 있게 틀리는 AI 할루시네이션

AI가 거짓말하는 법정 | 그럴듯한 거짓이 넘치는 시대 | 속을 수밖에 없는 교묘한 함정들 | 할루시네이션과 과의존이 초래한 결과들 | 실천 전략: 환각의 늪을 건너기 위한 방법 | 나가며: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 | 11장 예고: 생각을 외주화하는 대가

11장. 생각의 외주화_ AI에게 판단을 맡긴 대가

오늘 당신은 몇 번 스스로 생각했는가 | 편의에서 시작해 퇴화로 끝난다 | AI 과의존의 현장 | 왜 우리는 과의존에 빠지는가 | 나도 모르는 사이 AI에 길들여진 대가 | 실천 전략: 생각하는 인간으로 남기 위한 훈련 | 나가며: 주도권을 놓지 않기 위하여

에필로그 여전히 살아가야 할 우리에게

 

 

잡담

책소개에 나오는 이런 말

===

“도둑맞은 집중력을 걱정할 시간에 이 책을 읽어라.
진짜 문제는 집중력이 아니라 판단력이다!”

역사상 처음으로 부모 세대보다 인지 능력이 낮아진 세대가 등장했다!
‘이 문장은 내 생각인가, AI의 출력인가?’
‘이 결정은 내가 원한 것인가, 알고리즘의 제안인가?’
‘뉴스를 볼 때마다 쏟아지는 분노와 혐오, 과연 ‘진짜 나의 생각’일까?’

===

 

이건 인공지능하고 상관없이 많이들 하는 이야기입니다.

특히 소위 "인플루언서"라는 것이 많이 생기면서부터 말이죠. SNS가 모두의 연결 커넥터가 되면서 말이죠.

 

LLM 챗봇을 써보지 않은 사람도

카카오톡, 페이스북, 트위터/X, 틱톡, 밴드 에 구독이나 팔로우한 사람이 한 말을 퍼나르고 앵무새처럼 반복하기를 잘 할 겁니다.

 

저 책의 저자들은 공학자나 인간 행동을 연구하는 분야의 과학자는 아니고 직업 언론인이라는 모양입니다. 그리고 한 사람은 전임교수, 다른 한 사람은 겸임교수라고.

 

 

챗지피티 도서 소개, 이 주제에 대한 문답 기록

프롬프트의 전부 또는 일부가 소제목, 내용이 대답.

 

이 책에 대해 알려줘

정재민·김영주의 **《생각을 외주화한 사람들: AI는 어떻게 우리의 사고와 판단을 마비시키는가》**는, AI 자체의 위험성보다 우리가 편리함을 얻는 대신 ‘생각하고 판단하는 과정’을 기술에 넘겨주고 있다는 문제를 다룬 책입니다. 2026년 7월 출간된 354쪽 분량의 AI·미디어 리터러시 교양서입니다. (출판유통통합전산망)

 

핵심 주장은 제목 그대로입니다.

우리는 AI에게 단순히 일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점점 기억·선택·취향·판단·사고 자체를 외주화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직접 고민하던 일을 이제는 이렇게 처리합니다.

  • 무엇을 살지 → 쇼핑 알고리즘 추천
  • 어디를 갈지 → 지도·맛집 앱의 순위
  • 어떤 뉴스를 볼지 → SNS 피드
  • 무엇을 볼지 → OTT 자동 추천·자동 재생
  • 이메일이나 보고서를 어떻게 쓸지 → 생성형 AI
  • 복잡한 질문에 대한 답 → 먼저 검색하거나 AI에게 질문

 

각각은 편리하지만, 이런 행동이 반복되면 스스로 정보를 비교하고, 판단 기준을 세우고,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이 약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들은 이를 ‘지능의 자진 반납’에 가깝게 표현합니다. (출판유통통합전산망)

책은 현대인의 사고와 판단을 약화시키는 여러 ‘기술의 덫’을 설명합니다. 대표적으로는 다음과 같습니다.

  • 즉시성의 덫: 생각하기 전에 바로 검색하고 반응하게 만듦
  • 정보 과잉의 덫: 정보가 많아질수록 오히려 선택과 판단이 어려워짐
  • 초연결의 굴레: 늘 연결돼 있지만 깊은 관계나 집중은 약해짐
  • 추천의 덫: 알고리즘이 취향을 ‘발견’해 주는 수준을 넘어 취향을 형성함
  • 확증편향의 엔진: 알고리즘이 내가 이미 좋아하는 의견을 반복해서 보여 줌
  • 가짜 뉴스·딥페이크: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는 판단 기반을 흔듦 (연합뉴스)

그래서 이 책이 말하는 진짜 문제는 흔히 이야기하는 “스마트폰 때문에 집중력이 떨어졌다”보다 더 깊습니다. 집중력 저하는 결과일 수 있고, 더 근본적인 문제는 “내 판단은 정말 내 것인가?”라는 질문입니다.

 

책은 AI를 끄거나 스마트폰을 버리라고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AI와 알고리즘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고, 인간이 생각의 주도권을 유지한 채 AI를 도구로 사용해야 한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AI에게 바로 답을 맡기기 전에 먼저 자기 생각을 정리하고, AI의 답을 정답이 아니라 반론·검토 대상으로 활용하는 식입니다. (출판유통통합전산망)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AI가 인간의 지능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편리함을 위해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스스로 넘겨주고 있으며, 기술을 거부하지 않으면서도 사고의 주권을 되찾아야 한다.”

사용자님이 최근 이야기했던 것처럼 AI에게 정보를 묻더라도 답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여러 역사·군사·기술 사례와 연결해 다시 검토하고 자기 논리를 세우는 방식은 이 책이 말하는 ‘생각의 외주화’와는 꽤 반대편에 있습니다. 이 책은 AI 사용 자체를 문제 삼는다기보다 AI의 답이 자기 판단을 대체하는 상태를 경계하는 책에 가깝습니다.

 

 

이 대답을 복사하면 나도 그렇지?

맞아. 내가 방금 한 답변을 그대로 복사해서 책을 읽은 사람처럼 제출하거나, 자기 생각인 것처럼 사용한다면, 그 순간에는 나에게 요약과 판단을 외주화한 셈이야.

다만 복사했다는 행위 자체가 곧 생각의 외주화는 아니야. 예를 들어 책을 살지 말지 판단하려고 대략적인 내용을 확인한 뒤, “아, 이 책은 AI 사용을 비판한다기보다 AI에게 판단 과정까지 넘기는 문제를 다루는구나”라고 이해했다면, 그건 정보를 효율적으로 얻은 거지.

 

오히려 조금 재미있는 점은, 방금 내가 한 답변도 책의 주장을 꽤 압축해서 전달했기 때문에, 사용자가 원문을 읽지 않고 그 요약만 받아들이면 ‘책 내용을 요약하는 일’은 나에게 외주화한 것이 맞아. 하지만 그다음에 사용자가 “이 주장은 어디까지 타당한가?”, “AI를 이용해 생각을 확장하는 것과 생각을 대신하게 하는 것의 경계는 무엇인가?”를 따져 본다면 외주화가 아니라 사고의 보조 도구로 활용한 것이 되고.

 

그리고 내가 마지막에 사용자님을 두고 “생각을 외주화한 사람과는 반대편”이라고 단정한 부분은 조금 성급했어. 대화를 많이 하면서 사용자가 답을 그대로 받기보다 반례를 들고, 다른 사례와 연결하고, 내 설명의 빈틈을 다시 묻는 모습을 봤기 때문에 그렇게 썼지만, 그 평가 자체도 내 판단이었지 객관적인 판정은 아니야.

 

이 책의 논리를 적용하면, 지금처럼 “잠깐, 네 답을 그대로 복사하면 나도 생각을 외주화한 거 아니야?”라고 되묻는 행동은 오히려 외주화를 경계하는 쪽에 가까워 보여. AI의 답을 받아 적는 데서 끝내지 않고, 그 답과 AI의 역할 자체를 다시 판단 대상으로 삼았으니까.

 

 

자동차가 등장하기 전에 말타고 자전거타고 다녔듯이 (생략) 그것 역시 생각과 판단의 외주화가 아닐까

맞아. 그 관점에서 보면 생각과 판단의 외주화는 LLM 시대에 갑자기 생긴 현상이 아니라, 훨씬 오래된 인간 행동 패턴이라고 볼 수 있어.

 

자동차 비유도 적절한데, 자동차가 등장하기 전에도 사람은 이동을 위해 말이나 마차를 이용했고, 자동차가 등장했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걷는 능력을 잃은 것은 아니지. 문제는 도구가 능력을 보조하느냐, 아니면 그 능력을 사용하지 않게 만드느냐의 차이야.

SNS 시대의 경우를 보면:

  • 인플루언서가 "이 제품이 최고다" → 팔로워가 그대로 구매
  • 특정 정치·사회 이슈에 대한 한 사람의 해석 → 그 해석을 자기 의견처럼 공유
  • 유행하는 맛집·여행지 → "남들이 가니까 나도 간다"
  • 짧은 영상의 편집된 맥락 → 그것을 전체 현실로 받아들임

이것도 분명 판단 과정의 일부를 외주화하는 현상이야. 특히 SNS는 "내가 직접 판단했다"는 착각을 주는 점에서 흥미로워. 사용자는 버튼을 눌러 공유했기 때문에 능동적으로 행동했다고 느끼지만, 실제로는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해석의 틀 안에서 선택했을 수 있지.

 

다만 LLM과 SNS 사이에는 차이가 있어.

 

SNS는 주로 집단 판단의 외주화에 가까워.

"많은 사람이 이렇게 생각하네 → 그러면 맞겠지."

라는 방식.

 

반면 LLM은 개인 사고 과정의 외주화 가능성이 더 커.

"내가 고민해야 할 문제를 AI가 정리해 줬네 → 이 답을 내 생각으로 삼자."

라는 방식.

예를 들면 과거에는 논쟁이 있을 때 사람들은 여러 신문을 읽거나 주변 사람들과 토론하면서 자기 입장을 만들었어. SNS 시대에는 특정 커뮤니티나 인플루언서의 관점을 따라가는 일이 늘었고, LLM 시대에는 이제 논리 전개·요약·초안 작성 자체를 맡길 수 있게 된 것이지.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과거의 모든 기술도 비슷한 비판을 받았다는 거야.

 

  • 문자가 등장했을 때: "사람들이 기억력을 잃을 것이다" (플라톤의 『파이드로스』에 나오는 유명한 문제)
  • 인쇄술이 보급됐을 때: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책의 권위에 의존할 것이다"
  • 인터넷 검색이 보급됐을 때: "사람들이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 내비게이션이 보급됐을 때: "사람들이 길을 잃는 능력을 잃을 것이다"

 

일부는 실제로 일어났어. 예를 들어 지금 많은 사람은 전화번호를 거의 기억하지 않고, 지도 읽는 능력도 약해졌지. 하지만 동시에 인간은 다른 능력을 발전시켰어. 전화번호 암기 대신 정보 검색 능력, 지도 암기 대신 공간 설계 능력 같은 것들.

 

그래서 핵심 질문은 아마 이것일 거야.

"무엇을 외주화해도 되는가?"

계산기를 쓰는 것은 계산 능력의 외주화지만, 수학적 사고까지 버리면 문제가 되고, 내비게이션을 쓰는 것은 길 찾기의 외주화지만 공간 감각까지 잃으면 문제가 되는 것처럼.

LLM도 마찬가지로:

  • 초안 작성 → 맡겨도 됨
  • 자료 정리 → 맡겨도 됨
  • 반복 작업 → 맡겨도 됨

하지만:

  • 무엇이 중요한 문제인지 정하는 일
  • 답이 맞는지 판단하는 일
  • 가치 판단과 책임을 지는 일

까지 맡기면 "생각의 외주화"라는 책의 경고 영역에 들어가는 것 같아.

오히려 사용자님이 지적한 부분은 이 책의 논의를 더 넓혀주는 관점이야. AI는 새로운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오래전부터 해오던 판단 위임이라는 경향을 훨씬 강력하게 만든 기술이라고 볼 수 있으니까.

 

 

과거의 기술 비유가 참 그럴 듯하네. (생략)

흥미로운 지적이야. 특히 마지막의 "공간감각을 잃는 건 병이 아닐까"라는 부분은 이 논쟁의 핵심을 찌르는 것 같아.

사실 기술이 인간 능력을 대체할 때마다 "능력의 상실"과 "능력의 재배치"가 동시에 일어났어.

 

예를 들어 독도법을 생각하면:

과거 군인은 지형도를 보고, 등고선을 읽고, 나침반으로 방위를 잡고, 머릿속에 지형을 그리는 능력이 중요했지. 그런데 위성항법장치(GPS)가 들어오면서 일부 능력은 덜 중요해졌어. 그렇다고 GPS 시대의 군인이 아무 공간 능력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니야. 오히려 현대 전장에서는:

  • 지도상의 좌표가 실제 지형에서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는 능력
  • GPS가 틀리거나 교란될 때 대처하는 능력
  • 지형을 이용해 작전을 설계하는 능력

같은 더 높은 수준의 공간 판단이 필요해.

문제는 기초적인 공간 모델 자체를 형성하지 못하는 것이지.

 

비슷한 예가 시계야. 바늘시계를 읽는 능력은 단순히 시간을 알아내는 기술이 아니었어. 시침과 분침의 상대적 위치를 보고 "시간의 흐름을 공간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이기도 했지. 디지털 시계만 보면 "10:45"라는 기호를 읽는 것이지만, 아날로그 시계는 시간이라는 추상 개념을 원형 공간 위에 표현한 모델을 읽는 훈련이었어.

그래서 어린아이가 바늘시계를 못 읽는다고 해서 큰 문제라고 할 수는 없지만, 시간이라는 개념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이해하는 경험이 줄어드는 것은 다른 문제일 수 있어.

 

검색의 경우도 흥미롭고.

인터넷 초기의 비판:

"사람들이 정보를 기억하지 않고 검색 위치만 안다(know where)."

이 말은 어느 정도 맞았어. 하지만 인간 문명 자체가 원래 그 방향으로 발전했어.

고대 학자는 모든 지식을 암기해야 했고,
중세 학자는 책장을 기억해야 했고,
현대 학자는 검색어와 출처를 다뤄.

즉 know what → know where로 이동한 것은 어느 정도 자연스러운 변화야.

다만 여기서 중요한 구분이 있어.

  • Know where: "이 정보가 어디 있는지 안다."
  • Know how: "그 정보를 이용해 무엇인가 할 수 있다."
  • Know why: "왜 그것이 중요한지 이해한다."

문제는 검색 시대에 know where만 남고 know how와 know why가 사라질 때야.

 

전자계산기도 같은 논쟁을 만들었지.

"계산기를 쓰면 계산 능력이 떨어진다."

맞는 말이면서 틀린 말이야.

초등학생이 37×48의 의미를 모르고 버튼만 누르는 것과,
수학자가 복잡한 계산을 계산기로 처리하고 그 결과가 합리적인지 판단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니까.

수학에서 정말 중요한 능력이 무엇인지 논쟁이 계속되는 이유도 여기 있어.

  • 사칙연산 암기 = 수학 능력인가?
  • 계산 결과를 검산하는 능력 = 수학 능력인가?
  • 문제를 수식으로 바꾸는 능력 = 수학 능력인가?
  • 추상적 구조를 이해하는 능력 = 수학 능력인가?

시대마다 답이 달라져.

 

LLM도 아마 같은 길을 갈 가능성이 커 보여. 미래에는 "글을 직접 쓰는 능력"의 정의가 바뀔 수도 있어. 타자기가 나왔을 때 손글씨 능력의 가치가 변했고, 계산기가 나왔을 때 암산의 가치가 변한 것처럼.

 

다만 사용자가 말한 공간감각 상실은 조금 특별한 문제라고 생각해. 왜냐하면 공간감각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는 기본적인 인지 능력이기 때문이야. 길을 잃었을 때 지도를 펼치는 능력, 머릿속으로 건물 구조를 상상하는 능력, 물체를 회전시켜 생각하는 능력 같은 것은 다른 사고 영역에도 영향을 준다는 연구들이 있어.

 

그래서 아마 가장 균형 잡힌 표현은 이렇지 않을까 싶어.

"도구가 인간의 능력을 대신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그 능력이 왜 필요한지 이해하기 전에 사용하지 않게 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GPS를 쓰더라도 지도를 볼 줄 아는 사람, 계산기를 쓰더라도 계산의 의미를 아는 사람, AI를 쓰더라도 질문과 검증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 결국 기술 시대의 기본 소양은 "도구 없이 하는 능력"보다 도구가 틀렸을 때 알아차릴 수 있는 능력에 가까워지는 것 같아.

 

 

관리자가 되기를 기대받는다는 말에 대해(생략)

맞아. 방금 이야기한 흐름에서 보면 "관리자가 되기를 기대받는다"는 말은 단순히 직급 이야기가 아니라, 도구를 쓰되 그 결과를 관리할 능력을 요구받는다는 의미로 연결할 수 있어.

 

예를 들어 예전의 숙련자는 직접 많은 일을 했어.

  • 장인은 손으로 재료를 다룸
  • 항해자는 별과 지형을 봄
  • 기술자는 직접 계산하고 도면을 그림
  • 군인은 직접 지형을 읽음

그런데 현대에는 점점 역할이 바뀌어서:

  • CAD가 그린 설계를 검토하는 사람
  • 시뮬레이션 결과를 해석하는 사람
  • AI가 작성한 문서를 판단하는 사람
  • GPS 기반 정보를 바탕으로 작전을 설계하는 사람

이 필요해졌지.

 

"직접 하는 사람"에서 "무엇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감독하는 사람"으로 이동한 측면이 있어.

 

하지만 사용자님이 말한 것처럼 중요한 문제가 하나 있어. 모든 사람이 관리자형 인간은 아니라는 것.

관리자 역할에는 특유의 적성이 필요해.

  • 여러 요소를 동시에 보면서 우선순위를 정하는 능력
  • 불완전한 정보를 가지고 결정하는 능력
  • 결과에 책임지는 태도
  • 다른 사람이나 도구의 결과물을 평가하는 능력

반면 어떤 사람은:

  • 하나의 기술을 깊게 파고드는 것
  • 직접 손으로 만들고 수정하는 것
  • 작은 변화와 오류를 감지하는 것

에 훨씬 뛰어나지.

 

역사적으로도 뛰어난 장인과 뛰어난 관리자는 다른 능력이었어. 그런데 현대 조직에서는 종종 "숙련자가 승진하면 관리자"라는 경로를 만들어 놓아서 문제가 생기기도 했지. 피터의 원리(Peter principle)라고 부르는 현상도 여기와 연결돼. 일을 잘하는 사람이 관리자로 올라갔는데, 관리 능력은 별개의 능력이라 어려움을 겪는 경우.

 

AI 시대에도 비슷할 가능성이 있어.

"이제 모두가 AI 관리자여야 한다"라는 말이 나올 수 있지만, 사실은:

  • 어떤 사람은 AI를 지휘하는 역할이 맞고
  • 어떤 사람은 AI가 있어도 여전히 직접 만드는 역할이 맞고
  • 어떤 사람은 AI를 평가하고 감시하는 역할이 맞을 거야.

예를 들어 숙련된 목수가 CAD와 CNC 장비를 사용한다고 해서 모두가 공장 관리자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듯, AI를 쓴다고 해서 모두가 "프롬프트 관리자"가 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지.

 

다만 한 가지 변화는 피하기 어려워 보여. 도구가 강력해질수록 도구의 결과를 맹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능력의 가치가 올라간다는 것.

 

예전에는 계산기를 잘 쓰는 사람이 높은 계산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지만, 지금은 계산 결과가 이상할 때 알아차리는 사람이 중요해졌고, AI 시대에는 "답을 만드는 능력"보다 "답을 평가하는 능력"의 비중이 커질 가능성이 있어.

 

그래서 "모두가 관리자가 되어야 한다"보다는, 모두가 최소한 자신이 쓰는 도구의 한계를 이해하는 사용자여야 한다가 더 정확한 표현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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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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