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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닫힌 사회에서는 언제나 머리 나쁜 사람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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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닫힌 사회에서는 언제나 머리 나쁜 사람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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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교수님의 연재에 대해서는 전에 적은 적이 있습니다.
* 참고: 현대 한국인을 돌아보는 연재: 이어령의 한국인 이야기 (중앙일보 연재)
* 이어령의 한국인 이야기: http://news.joins.com/opinion/leeoyoung.html

다른 칼럼도 그렇지만 29일자 칼럼도 느끼게 하는 게 많네요.


일제강점기 말엽에 전국의 소나무 뿌리를 뽑아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습니다.
대용식품으로 껍질을 벗기고 이파리를 따고 꽃을 따고
연료 대용으로 잔가지를 자르고 큰 줄기를 자른 데 더해서
저런 식으로 뿌리까지 뽑아버렸으니, 우리 나라 산이 민둥산이 된 게 과연 이상할 게 없었습니다.

오늘 칼럼을 읽고 놀란 건
1) 그런 생고생을 시켜 사람을 착취한 결과 얻어낸 기름이 실제로는 쓸모없었다는 점이고
2) 그럼에도 일제는 그 짓을 계속 시켰다는 점이고
3) 그것을 평가한 이어령 교수님의 말씀,
"닫힌 사회에서는 언제나 머리 나쁜 사람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과
사람을 들볶는 것을 일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윗사람으로 앉아 있다는 점이다"

라는 부분입니다. 필자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1) 일제 말기 소총이나 군마(馬)의 값은 500엔이었다.
2) 일제가 제시한 병사의 값은 2전 5리였다.
총값이 사람값의 2만 배였고, 후방 노동력은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동원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 삽질을 계속 시킬 수 있었다는 겁니다.

일찌기 로마 제국 초대 황제였던 아우구스투스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앉아 있는 병사는 병사가 아니다"
군대는 전투든 건설이든 일거리를 주어야 한다는 말이었는데요,
2000년 전 로마군은 양반입니다.

당시 일본군은 그저 꼴통이 부하를 굴리는 것을 잘 한다고 생각한 것이고
그 바탕에는 너무너무 싼 사람값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악습은 현대 한국군에게 까지 이어집니다.
1950년대부터 60년대까지 한국군 병사의 월급은 사회인의 노동값을 감안한 값이었다고 합니다. 히지만, 이후 40여년간, 사회는 고도 성장기를 지났지만 병사 월급은 동결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때를 산 사람조차, 누구도 그것이 원래 월급이었다고 기억하지 않습니다. 건빵값이라고 생각하지.

박정희 정부가 잘 한 일은 앞서 장하준씨에 관한 글에서 충분히 옹호했으니, 여기서 욕을 잠깐 하면, 박정희 이 자식, 일본군 장교 출신이 대통령하더니 병사값을 참 보리차값으로 알았구나! 했다는 겁니다. (전두환, 노태우 똑같아요. 앞으로 소위 월급은 초년차는 일반하사 월급으로 줘야 체감하지 않을지..)

2009년 현재 한국군 병사의 평균 월급은 제식 소총인 K2 한 자루의 몇 분의 1에 불과합니다.
(그나마, 몇십 분의 1이었다가 수 년에 걸쳐 나아진 것이 그렇습니다)

말이 옆으로 많이 샜네요.
칼럼의 앞 부분에는 저 꼴을 알게 된 미군 첩보대의 보고 이야기도 있습니다. 한 번 들러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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