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PC Geek's

조선 후기의 채소 농사에 관한 글 본문

농업, 원예

조선 후기의 채소 농사에 관한 글

조선 후기로 타임슬립하고 싶지는 않군요.

하긴 의학수준을 생각하면 동서양 모두 20세기보다 앞으로는 가고 싶지 않지만.

 

[조선의 잡史]〈65·끝〉여성이 운영권 가졌던 ‘채소전’
장유승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책임연구원
동아일보 2018-09-04

 

17세기 전반과 18세기를 전후해 조선시대를 산 두 사람

 

“우리나라 사람들이 겨울을 나기 위해 보관하는 채소는 무김치가 고작이다. 산나물은 산골 사람 외에는 보관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ㅡ 유수원(1694-1755)

 

“내가 오랫동안 민간에 있으면서 보니, 농가에서는 채소를 전혀 심지 않아 파 한 포기, 부추 한 단도 사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 ㅡ 정약용(1762-1836), 목민심서

 

의외죠?

 

기사에 언급된 사실

 

ㅡ 도성 안에서는 원칙적으로 농사를 금지해서, 한양사람이 먹는 채소는 모두 근교의 채소밭에서 재배한 것. 지방 대도시도 그랬다고. 조선시대 근교농업!

ㅡ 도성으로 반입된 채소는 채소전(菜蔬廛)[각주:1]에서 팔거나 여성 행상인이 팔러 다녔음. 채소전의 운영권은 여성 상인에게 있었고[각주:2], 트럭 행상이 등장하기 전까지 대한민국이 그랬듯이, 조선시대도 행상을 하는 사람은 여성이었음.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바구니를 메고 다녔음.

ㅡ 물료가치성책(조달청 장부비슷한 조선후기 문서)에는 채소 50여종 가격이 언급돼있는데, 배추 한 근에 쌀 2말, 파 한 단 쌀 1되, 상추 한 단 쌀 5홉 등. 당시의 채소는 지금같은 큰 개량종도 아니니 싼 느낌은 아님. (다만 예나 지금이나 채소류의 근이나 단을 이르는 규격은 종류마다 다르기 때문에 제대로 비교하려면 연구가 더 필요할 듯)

ㅡ 궁중에 납품하는 채소는 내농포라는 기관에서 재배했다는데[각주:3], 거기 쓰는 채소 종자는 중국가는 사신들이 구입했다는 기록이 있나 봄. 조선왕조는 국내에 육종기관을 설치하지 않았나? 궁금하네.

ㅡ "조선시대 농부들은 주곡(벼 등)농사를 하면서 채소농사를 병행하지 않았다"는데 이 부분은 수긍이 잘 안 감. 노동이 필요하고 땅이 필요하다는 말은 맞는데, 모든 농부가 자급용도말고 내다 팔 채소농사를 병행하지는 않았다는 뜻일까?

 

  1. '야채전'이 아니라 '채소전'임에 주의. [본문으로]
  2. 채소전만은 아니고 여성이 운영권을 가지도록 한 종류가 몇 가지 있는 듯. [본문으로]
  3. 내농포에 대해, 그리고 내농포의 위치에 대해서는 각각 링크 참조. [본문으로]
이 글과 같은 분류글목록으로 / 최신글목록 이동
Comments
Viewed Posts
Recent Comments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