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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전쟁 일본군의 임팔작전: 군복입은 사무라이의 행동: '뭐라도 해야' 할 만큼 핀치에 몰렸다해서 정말로 아무거나 하면 안 된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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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전쟁 일본군의 임팔작전: 군복입은 사무라이의 행동: '뭐라도 해야' 할 만큼 핀치에 몰렸다해서 정말로 아무거나 하면 안 된다!

아래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대사를,
그들이 2차대전때 현역이던 1차대전사고방식 장군이라고 생각하지도 말고
현대무기를 알고 군복을 입힌 전국시대 사무라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잘 돼요.
경영분야에서 반면교사로 가끔 회자되는 일화입니다.

https://youtu.be/6QVyC_DSqLo


1.
1943년, 슬슬 기우는 전황, 잇따르는 패전소식.
"뭐라도 해서"[각주:1] 대외적으로는 물론 대내적으로도[각주:2]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처지에 몰린 대본영.
중일전쟁의 뇌관 무타구치 렌야!
적어도 중일전쟁때부터 렌야의 상관이던 가와베 마사카즈!
다시 그의 상관인 금수저 데라우치 히사이치![각주:3]
다시 그의 상관인 스기야마 하지메!
그의 연줄인 문어발[각주:4] 문어머리[각주:5] 도조 히데키!
(˚황금라인˚이었죠 ^^)

중일전쟁때부터 부대장으로서는 안 될 짓을 해서 국가의 운명을 바꾸었지만,
일신상으로는 운이 좋아 영전을 거듭한 무타구치는,
이번에도 나름대로 기사회생의 수를 냈는데.. 그것이 임팔작전.
혹시나 잘 되면 전황이 바뀐다!

각급부대의 실무를 맡은 참모들이 전부, 전력비교이전에 보급이 안 돼 실패한다며, 구체적인 숫자를 들이대며 반대한 것을 무시하고
연줄로 승인받아 밀어부친 작전의 예상된, 하지만 '알고 싶지 않은' 차질.
여기서 다시 끄집어낸 과거의 유산.. 정.신.력. 일본인은 초식동물!
전투력을 까먹으며 어떻게든 겨우 전선에 도달은 했지만 그것이 끝.
돈좌된 현장을 무시하고 무타구치는, "폐하의 생일까지 꼭 점령해라"

기습이라며 짠 작전이지만, 일본군의 동향을 미리 탐지하고 영국과 미국은 '쇼미더 머니'로 튼실하게 준비![각주:6]
영국군 정예병력의 전술적 우위, 일본군의 몇 배에서 열 배에 이르는 연합군 화력과 공중지원, 반격.
그나마 전투와 무관하게 굶어죽고 병들어죽어 부대가 와해.
결국 사단장은 철수 결정.
그럼에도 대본영은 무타구치보다 사단장을 항명죄로 처벌하려 했지만,
재판이 열렸다가는 자기들의 무능한 행위가 드러나니 내부 징계만.[각주:7]


2.
작전은 실패할 수 있죠. 우리편 책임이든 우리의 책임이 아닌 이유든, 불확정요소가 많으니까.
하지만 그 다음 대응이 안 되는 게 당시 임팔작전의 일본군 상위 지휘계통이었다는 것.
당시 작전 실패가 명백해진 다음, 그 뒷감당이 안 되어 결국 군 단위가 사라지는 참상이 벌어지게 된 이유가 나옵니다.
중간 중간 일본인의 의사결정과 일본어의 (웃픈) 묘미이야기. (같은 동양계인 우리도 없다고는 못하는)

그리고 대본영은 책임회피 밑밥을 작전 전부터 깔아놔서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각주:8]
어쩌면 사전에 깔아놨다기보다는 그냥 당시 그 조직이 체화한 문화가 아닐까. 저 다큐를 보면 누가 이렇게 말해요. "도망가주는 겁니다 아니 도망갔습니다." 오묘한 일본어.

임팔작전의 실패가 명백하게 된 다음 만난 무타구치와 가와베가 나중에 책임질 빌미가 되는 말, 자신의 체면을 깎는 "철수하자"는 말을 자기 입으로 먼저 꺼내기 싫어 멀뚱멀뚱 표정으로 상대에게 메시지를 전달했고, 결국 제3자(상부)의 결정으로 철수명령이 나오기까지 수많은 장병이 의미없이 죽어갔다는 포복절도할 이야기, 이것이 1944년.

그리고, 그 1년 전 과달카날. 자신만만하게 현지지도를 왔다 피터지게 깨진 '작전의 신' 츠지 마사노부.. 이제 빨리 철수하는 길만이 많은 전력을 보존하는 길이었지만, 일선 총지휘관을 현지에서 해임할 권한을 휘둘렀음에도 이때는 사석에서는 "노몽한(할힌골)보다 어렵다"면서도 공식 보고에는 결코 상부에 철수를 상신하지 않고 자기만 몸을 빼 먼저 도망갔습니다. 그 결과 부대는 거의 전멸해버렸습니다.

임팔에서는 동료의 인육을 거래하며 철수한 일본군. 과달카날에서는 속수무책으로 굶어죽어간 일본군. 보급을 등한시했거나 보급이 안 되는 상황을 무시해 그런 참상을 자초했고, 부상한 동료와 환자를 자살을 종용하거나 자기 손으로 살해하고 도주하도록 명령한 일본군 장교들.
"승패는 병가지상사"라는 오래된 명언이 있지만, 이건 그 말로 변명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말은 "진인사대천명"한 다음에 해야겠죠.

  1. 일본대본영(육군)이 1억 총옥쇄론을 꺼낸 이유 중 하나에도 이게 들어갔다고 한다. "그 다음에 무슨 일이 있어도 좋으니까 한 번이라도 좀 미군을 이겨보자. 이겨서 체면을 세워보자!"라고. 일본 해군 역시 그랬다고 한다. "전쟁이 끝난 다음에 야마토가 온전하게 남아있으면 해군이 얼굴을 들지 못한다"는 이유로, 전함 야마토를 포함 4천 명 넘게 태운 함대를 야마토에 편도항해만 할 수 있는 연료만 주도록 하고 오키나와 근해로 보내 미해군에게 제물로 바친 것. [본문으로]
  2. 전황이 불리해지니 군부가 정치적으로 수세에 몰리고 있었습니다. [본문으로]
  3. 조선총독 데라우치의 아들. [본문으로]
  4. 전쟁시작이후 각부장관을 겸임하기 시작. 당연히 혼자서 못 챙기니 차관정치. [본문으로]
  5. 전쟁 전에는 일본육군에서 소수파벌이면서 개전반대를 말한 적이 있어서, 일왕과 비서들이 '도조에게 총리직을 맡기면 군을 다독여 전쟁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했다는데, 결국 개전. [본문으로]
  6. 시청자생각에 1942년 초 파죽지세로 밀어부칠 때는 연합국이 준비가 안 돼서 오히려 가능성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때는 또 무타구치가 반대했다고 합니다. [본문으로]
  7. 임팔에서, 무타구치는 31사단장에게 자살을 종용하는 의미로 칼을 보냈다는데, 격노한 사단장이 이걸로 사령관배를 갈라버리겠다며 그 칼을 수령했다는 일화가 있다 [본문으로]
  8. 그러고 보니 떠오르는 게, 필리핀전투 이후 학살명령을 내렸다는 "그놈"도 상관의 명령을 사칭했으면서도 문서화하지 않았고 본인이 전후 잠적하는 바람에, 전쟁범죄를 책임질 사람을 찾던 연합군은 그의 상관을 잡았다고 하더군요. 또 태평양전쟁당시 일본군에는 책임지지 않기 위한 '복자명령서'(예: '이러이러한 자는 OO하라'는 식으로 처형을 OO으로 표시한 명령서)가 흔했다고 합니다. 같은 군교육기관을 나온 사람들, 같은 조직문화에 속한 사람들은 OO가 뭔지 이심전심으로 알고 공란을 채워 이해하는 명령서.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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