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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귤은 다 먹었군요. 오질나게, 너무 비싸요! /:/ 조율이시(조율시이)는 없습니다. 차례는 간단하게! /:/ 옛날 제사의 실용적 역할 상상 본문

농업, 원예

올해 귤은 다 먹었군요. 오질나게, 너무 비싸요! /:/ 조율이시(조율시이)는 없습니다. 차례는 간단하게! /:/ 옛날 제사의 실용적 역할 상상

오질나다: '야무지고 알차다'는 뜻을 가진 '오지다'의 변형 또는 사투리라고 한다. 어감은 상태의 정도를 0~10점으로 매기면 11점이라는 느낌? 활용형은 강조하는 부사로 사용된다. 예) 이 고추는 오지게 맵다

 
 

1월이 지나가 면서 귤값이 폭등했습니다.

언제나 1월은 귤값이 오르는 철이었지만, 올해는 비상식적으로 가파른데요. 
사과 10kg 36과수는 한 박스 10만원내외까지 올라가 완전 ㅁㅊ버렸기는 했지만
귤값도 지금 검색해보니 2L짜리 제일 큰 주먹만한 등외품(낙과가 아닐까 생각되는 흠과라든가, 시들었다거나, 잼, 주스용이라고 꼬리표달아놓은)까지 2만원을 훌쩍 넘어가는군요. ㅁㅊ어.. 바로 보름 전까지 동네마트에는 정품 5kg 1만원대에 팔아 사먹었는데 지금은 얼마할지 가보기도 겁납니다. 설때는 제사상에도 올리면서 손님접대용으로 가장 부담없는 과일이 귤이었는데요. 대접할 때 과일을 손질할 것도 없고 먹기도 쉽고.
 
이번 설에는 딱 상에 올릴 만큼만 사야겠네요. 아니면 노란 과일은 단감도 있으니 귤은 올리지 말든가 오렌지로 대신하든가. 어차피 조율이시(원래 이것도 날조된 말이고 허황되다고 하죠)에 들어가지도 않으니까.
 

 
 
아, 귤 좀 수입하면 좋겠다.
남해안가 지방에 친척이 있으면 귤농사지으라고 하면 되겠다.. 다른 과일과 달리 겨울에 출하되니 딱 좋죠.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홍동백서, 조율이시 예법에 그런 말 안나와…물 한 그릇을 놔도 마음이 중요” -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

동아일보  2023-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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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 ‘현대화 제사 권고안’ 공개
https://www.donga.com/news/Culture/article/all/20231102/121987762/1

“홍동백서, 조율이시 예법에 그런 말 안나와…물 한 그릇을 놔도 마음이 중요”

“자손들은 물가도 오르고 살기 힘든데, 내 제사상, 차례상 푸짐하게 차려내라고 할 조상님이 계시겠습니까?”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위원장 최영갑)가 2일 국회에서 ‘현대화 제사 권고안…

www.donga.com

 

“자손들은 물가도 오르고 살기 힘든데, 내 제사상, 차례상 푸짐하게 차려내라고 할 조상님이 계시겠습니까?”

―솔직히 차례상과 제사상을 혼동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주자가례에도 추석 상차림을 어떻게 하라는 건 없습니다. 그 계절 음식과 과일을 올리라는 딱 이말 하나뿐이죠. 차례는 정말 간단하게 지내는 것인데 세월이 지나면서 제사와 혼동이 되고 이것저것 음식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과하게 변한 것 같습니다. 흔히 홍동백서(紅東白西), 조율이시(棗栗梨柹) 그러는데 예법을 다룬 문헌에 그런 말은 안 나옵니다.”

"제사 문화가 바뀌어야 합니다. 중요한 건 마음이지요. 정 안되면 냉수 한 그릇을 올리더라도 그날만큼은 돌아가신 분을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다면 저는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 동아일보

 
 
 
(추가)

* 여담. 옛날 제사의 실용적인 의미 상상

그런데, 위 기사에서 언급된 "제사문화가 과하게 변한 것"은 과시나 잘못된 인식을 물려받은 것도 없지 않았겠지만, 물자가 풍족해진 1980년대 이전의 생활상하고도 연관해 납득해야 할 부분도 있지 않을까? 먹을 게 풍족하지 않았고 그나마 곡물내지[각주:1] 탄수화물이 섭취열량의 대부분이던 시절[각주:2], 제사는 몸보양에 좋은 이벤트였을 것이다.
 
예를 들어 도시민이라도 3대가 같이 사는 것이 당연했던 대가족제도, 그리고 이웃사촌이란 말이 비유가[각주:3] 아니던 시골 집성촌을 생각하면, 한 집에서 제사와 차례를 합쳐 일 년에 적어도 5번은 있었을 것 같다. 설, 추석, 한식성묘, 기제사 2번. 한 집에 삼사 대가 같이 살았고 지금보다 평균수명이 짧았을 것을 생각하면 2번 더 있어도 이상하지 않고, 그리고 제주의 위로 4대까지 모신다고 하면 그건 매달 뭔가가 있는 것이나 같을 것이다. 물론, 하나낳기를 하고 두 세대째인 지금과 달리, 한 집에 형제가 적어도 3~4명을 넘던 당시니만큼 맏아들이 아니라서 제사를 안 지내는 집도 많았겠지만 반면 제사에 성실하게 참석하는 것이 일상이었을 테고, 8촌 이내의 친척집 제사까지 챙기던 시절이니 그만큼 자주 모였을 것이다. 
만약 사당을 모시는 종가라면 제사는 더 늘어난다. 제사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조.
 
그러니, 실용적인 의미로서 제사는 현대의 외식에 대응하는 옛날의 영양섭취 이벤트기도 했을 것 같다. 그 집 식구들은 물론이고, 모여든 친척들까지 제사준비를 돕고 나누어 음복하는 것이다. 모여든 사람이 많고 그 사람들이 평소 배불리 먹지 못했으니 음식이 남을 리가 없어 양이 적을 수가 없고, 냉장고도 없던 시절이니 빨리 먹어치우고 며칠 뒤 다른 집 제사에 가는 것이다. 그리고 음복한 사람이 집에 돌아갈 때 싸주기도 했고[각주:4] 그것은 내가 본 종가집 제사도 그랬다.
 
 

  1. 많이 먹던 콩은 단백질 급원이기도 하다. 그리고 쌀은 밀보다 단백질함량이 높다고 들었다. [본문으로]
  2. 1970년쯤 한국인의 영양섭취는 9할이 곡물이었다는 정부 조사기록이 있다. 보릿고개가 남아있었고 혼분식을 권장하던, 필요한 칼로리를 풍족하게 채우기 힘들던 시절이다. [본문으로]
  3. 현대에는 부모자식간에도 전국에 떨어져 사니까 이웃이 사이좋으면 먼 데 사는 친척보다 낫다는 뜻으로도 사용될 수 있겠지만, 옛날에는 도시민이라도 친척이 큰 마음먹지 않고도 방문할 수 있는 거리에 사는 게 흔했다. [본문으로]
  4. 이것을 "귀신이 따라온다"며 집에 가져가는 것을 좋게 생각하지 않는 집도 있었던 것 같지만. 그리고 요즘은 손님 본인은 제사에 참석했다 해도 손님 본인이나 집의 가족이 믿는 종교가 다르면 달가워하지 않기도 해서, 가정사정을 잘 아는 가까운 집이 아니면 싸주는 쪽에서도 조심스럽다. 반면, 꺼리지 않고 맛있으면 됐다며 넙죽 받아가기도 하지만(교회나 성당에서 세례식이나 부활절이나 크리스마스때 나눠주는 과자나 음식을, 자기 종교가 무엇이든 꺼리지 않고 받아먹는 것과 다를 게 없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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