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구호식량, 대북식량지원에 대한 푸념

이 글은 시간을 들여 알아보고 생각하고 쓴 내용이 아닙니다. 주의해주세요.


요즘 쌀이 풍작입니다.
그리고 쌀값이 폭락한다고 말이 많습니다.
일부 농민은 논을 엎는 시위를 했고, 정부는 수매량을 늘렸습니다.

그런 가운데 이런 기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출처: news.google.com

뭐, 출처는 연합뉴스네요. 과테말라정부가 기근이 심해 옥수수 농사를 망쳤답니다. 국제 사회에 6600만달러 상당의 식량지원을 요청함에 따라, 우리 정부 차원에서 10만 달러 상당의 긴급식량지원을 결정했다는 기사입니다.

그런데, 식량지원 품목이 뭔지 아세요? 건빵, 봉지라면, 전지분유라고 합니다.

이 세 가지 중 우리에게 남아도는 것은 무엇일까요? 별로 없습니다.
최근 중국으로 유제품 수출이 늘면서(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아이들에게 우유를 먹이자!"고 말했다고 합니다) 낙농가는 여전히 어렵다지만 우유업체는 얼마간 피는 모양입니다. 유업계의 고질적인 문제, 치즈와 고가 가공품 시장을 게을리하고 우유 중간마진만으로 장사한다는 비난도, 중국 수요가 있는 동안은 유예받을 것 같습니다.

밀가루는? 라면과 건빵에 들어가는 밀가루는 전부 수입산입니다. 국제곡물가와 환율덕에 이달 들어 약간 내린 상태입니다. 하지만, 국제곡물가가 올랐다고는 해도 국내 쌀값보다는 아직 수입 밀가루값이 쌉니다. 국내 밀가루 3kg가 싸게 사면 3천원대 초일 텐데, 쌀은 떡이나 과자용 부스러기쌀(도정과정에서 부서져 정품 쌀에 들어가지 못하는 쌀조각. 가장 쌉니다)이 그 정도까지 내려와 있었습니다. (도매가는 모르겠습니다)


여기까지 읽으셨으면 생각이 들 겁니다. 남는 쌀로 지원하지 그래..
먹을 게 부족하다고는 해도 거기 사람들에게 본 적도 없던 쌀을 먹으라는 건, 내일 아침밥으로 안남미로 지은 밥을 먹으란 이야기보다 더 황당할 것입니다. 그럼 쌀건빵, 쌀라면은 어떨까요? 쌀 소비를 위해 내년도 국방 예산에 군인 "쌀떡 간식"비를 47억 원 배정했던데, 기왕이면 증식(간식)용 건빵도 쌀건빵으로 바꿔 생산하도록 하면 좋을 텐데요. :)

* 뭐, 언제나 군대는 농산물이 남아 파동이 생기면 버퍼로 기능했습니다. 닭, 귤, 무, 배추, 이제는 쌀.. 농민들은 군인 고마운 줄을 아셔야. ^^(웃자는 이야깁니다)

구호식량을 예산을 주고 현지에서 구입하도록 하는 방법은 몇 가지 단점이 있다고 합니다. 몇 가지는 기사를 읽은 것, 몇 가지는 제 생각.
1. 자국 산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런 용도로 미국은 미국 식량을 미국 배를 통해 운반하도록 법제화하고 있습니다.
2. 구체적이지 않다. 돈만 주고 땡이면 아무래도 느낌이..
3. 현지구매는 결국 기근이 일어난 지역과 그 인근지역에서 사라는 말인데.. 이 말도 일리가 있습니다.
4. 돈으로 주면 부정이 끼어들 여지가 크다. 정치가 안정되지 못한 나라들은 식량과 우유로 가도 약탈해가기도 합니다. 안정된 나라라도 북한 정도면 현물도 정부에서 빼돌린다는 의심을 받습니다.

물론 현지구입이 장점도 있습니다.
1. 현지에서 필요한 것을 선별해 인근 지역에서 신속하게 조달할 수 있다.
2. 도움을 주는 나라의 경제 문제가 끼어들지 않으므로, 식량 조달 비용이 더 저렴하다.

작년인가, 이명박 대통령은 쌀이 남으니 쌀국수를 많이 먹자.. 이래서 쌀국수에 질린 제가 욕을 바리바리 했더랬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정말 그럴 때가 오고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북한 식량지원
우리 정부의 대북 식량 지원은 흔히 "굴욕적"이란 말로 함축됩니다.
왜냐 하면, 경제 지원을 해서 북한 정부로부터 사의를 받은 적이 없으며, 대남 불바다 발언이라든가, 핵개발이 남한을 해방시킬 것이라든가 등등 심한 말을 들으면서도, 그리고 군사 충돌을 겪으면서도 대북 식량지원, 비료지원은 계속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근저에는, 국군 포로문제와 탈북자 문제, 금강산, 개성공단 민간인 문제 등에서 북한의 눈치만 보는 정부 당국자의 처신과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는 잘못 없다'는, 도저히 협상 자세로는 보이지 않는 북한의 뻣뻣한 태도에 큰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런 현상은 결국 2007년의 선거에 반영되었다고 봐도 되죠.

그렇게 당선된 이명박 정부는 종전과 같은 식으로는 경제 지원을 할 수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그 증거랄까, 당분간 대북 비료지원과 식량지원은 중단된 상태며 재개되리란 전망도 없습니다. 최근 이산가족 대면에 대한 댓가를 요구했다는 소문도 있지만, 그건 글쎄요.. 그들이 언제나 외치는 "우리는 한 민족"이라면 그 정도는 댓가성이 없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네요. 게다가 북한은 국군포로 문제는 여전히 귀를 닫고 있으며, 납북된 사람들을 상봉하게 해달라는 요청도 거절했습니다.

사실, 관광객이 초병에게 사살되고, 북한 말을 고려해도 말때문에 사기업 직원이 장기 억류되는 상황을 좌시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저만 해도 이 때만은 이명박이가 대통령이 돼서 잘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미국은 어떨까요? 맨날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미국 vs 북한 말입니다.
미국 대북 식량지원 한국재경신문 기사를 보면, 미국의 대북 식량지원 기록은 이렇습니다.

1996	1.95
1997	17.7
1998	20
1999	69.5
2000	26.5
2001	35
2002	20.7
2003	4	북핵위기파장으로 식량지원 축소
2004	11
2005	2.5	2005년 말 중단
2006	0
2007	0
2008	15.8	2008년 6월 재개
2009	2.1	3월. 북한이 식량지원 거부

(단위는 만톤입니다. 소스는 FAS)

재미있죠?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묘사하던 시절에도 미국은 인도적 식량 지원은 계속했으며, "부시는 악마"라고 줄기차게 욕하던 북한도 물밑으로는 주는 쌀을 넙죽넙죽 잘도 받아먹었단 말입니다. 이 둘은 서로 하는 말과 행동이 다릅니다. 우리가 독자적으로 정책을 가져가든, 미국과 싱크하든 참 마음놓을 수 없는 나라들입니다. 2008년 6월의 지원 재개는 시사IN에서 재미있는 기사를 낸 게 있습니다.

식량 지원은 북한의 거부로 올 초에 중단됐지만 최근 슬슬 서로 운을 띄우는 분위기라 미국 정부는 '인도적인 식량 지원'은 계속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우리 정부는 되어 가는 모양을 보며 뚜렷한 진전이 있을 경우, 쌀지원을 재개하긴 할 것입니다. 미국이 퍼주는데 우리가 안 주는 건 또 그러니까요, 하지만 이번에는 미국처럼 줄 때와 안 줄 때를 구별하는 센스를 보이면 좋겠습니다. 저 표를 봐도, 미국은 핵실험이나 미사일  등 중대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식량지원도 끊어 의사를 표시했습니다. 우리 정부는 그 와중에도 그냥 주었습니다.

그걸 나름대로 좋게 해석하면, '북한의 대한 의존도를 높이는 정책'이 될 것 같습니다. 누구도 안 줄 때 우리는 도와주니까요. 이런 김대중노무현 대북 정책의 본질은 "호혜가 되면 좋고 안 되더라도 대한 의존도를 높이니 좋다"는 겁니다(어차피 김정일과의 거래에서 쌍방에게 인도주의는 그에게는 그럴 듯한 명분, 우리에겐 최종적인 이상이지 손에 잡히는 무엇은 아니었어요).  여기까진 좋아요. 이게 핵이 되고 미사일이 되면 다른 문제가 되니 그렇지. 남북대화 기사를 읽다 보면 화성인과 금성인을 보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최근 일부 농민단체는 대북지원 재개를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이들 말로는 그 동안 "연간 40만 톤씩 지원하다가 그걸 끊는 바람에 국내에 재고가 생겼다. 북한으로 보내라"는 이야깁니다. 정부가 40만톤 추가 수매해서 나라 밖 어디로 처분하란 이야기입니다. 즉, 저 단체는 특별히 북한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어떻게든 해서 국내 쌀 공급을 40만톤 줄이란 말이죠.
* 쌀을 대북지원하든 아프리카 어디에 지원하든, 생쌀이나 쌀라면을 만들어 과테말라에 보내든 그런 건 덤핑수출과 달리 무역 협정을 거스르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긴 합니다.

어쨌든 이에 대해 농림부는 부정적입니다. 그렇다고 별 대책이 있는 것도 아닌 듯 해 좋은 평가를 줄 수는 없어요. 하지만 그동안 북한에 쌀을 지원한 이유나 지원을 중단한 이유만큼이나 지원을 재개할 이유도 외교적인 문제인 점은 인정합니다. 남는 쌀로 도와준다고 우리가 좋은 말 듣겠습니까. 미사일은 쏴댈 테고 핵개발도 계속할 테고, '한국은 비켜, 미국과 협상한다' 이럴 테고.

개성 공단만 해도 지난 몇 달간의 위기가 보여준 현상은 북한의 100% 실책입니다. 마피아 두목이라도 '믿을 수 있으면' 거래하는 것이 민간 회사입니다. 한 나라 정부라도 신뢰가 깨지면 거래는 어렵습니다. 노무현정부 내내 개성공단 파트너로서의 북한 정부를 믿을 만 한가 하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신뢰는 쌓여가는 듯 했습니다. 그러다 이번에 통행제한까지 감으로써 북한 정부는 스스로가 못 믿을 파트너임을 증명하고 말았고, 안전과 납기가 불분명해진 투자 기업들도 바이어를 잃음으로써 큰 손실을 입었습니다. 핵은 핵, 공단은 공단이라는 원칙을 북한이 유지해줬어야 했는데.. 그러면 북한도 그 연장선상에서 채널을 활용할 수 있었을 텐데 많이 아쉽습니다.

* 우리 정부의 대북 식량지원은 직접 수송만으로 되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2007년까지 세계식량계획의 북한 구호식량쪽 기금에 상당액을 기부했습니다. 하지만 신정부들어 중단한 모양입니다.
** 그런데, 국제 기금의 북한지원 계정에 출연하기보다 직접 인천항에서 실어가는 것이 같은 비용으로 더 많은 쌀을 지원할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회하면 행정처리 등 부대비용이 들어간다나요. 대신 배급현황 확인은 국제기구쪽이 훨씬 빡빡하게 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이 기사 를 보면, 작년에 재개된 미국의 북한 식량 지원이 올해 초, 북한의 거부로 중단된 이유가 나옵니다. 미국에서는 올해 계획한 50만톤 중 40만톤은 세계식량계획을 통해, 10만톤은 미국내 민간 기구를 통해 지원하기로 하고 각각 한국어를 구사하는 감시 요원을 북한에 파견하기로 북한과 합의했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미국 민간단체 소속 감시원은 입국을 허락하고 세계식량계획소속 감시원에게는 입국을 거부했습니다.

2008년에도 식량사정이 상당히 안 좋았던 만큼 여유가 없을 텐데도 북한은 이런 선택을 했는데, 덕분에 세계가 지원한 식량을 북한이 내부에서 어떻게 분배하는 지는 의심만 더받게 됐죠.

그런데, 만약 쌀이 지원 단체의 의도대로 배급되지 않는다면 어디에 쓰일 수 있나?
북한내 비축미를 대신하고 오래된 비축미를 배급하거나, 배급 우선순위를 북한 자체적으로 정하거나, 질좋은 지원미를 다른 나라에 팔고 질은 낮지만 양이 훨씬 많은 태국쌀, 옥수수 등을 수입하고 일부 차액은 결제용으로 쓴다는 말이 있습니다.

북한은 무엇일까요?
북한에 식량을 지원한다는 건 무엇을 뜻할까요?

저는 김대중, 노무현식 접근 방식은 싫어합니다. 이번 5년간, 이번에는 북한이 변하기를 바랍니다.
북한의 체제가 변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닙니다. 마피아 두목은 마피아 두목으로서 남아 있어도 좋습니다.
국군 포로 문제와 납북자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면 최선으로 생각합니다. 만약 거기까지 싫다면
최소한 그가 이전보다 조금 더 신뢰할 수 있는 대화 상대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매 수 년마다 태엽을 다시 감는 식으로 전개되는 대북 관계는 더는 사양하고 싶습니다.

인도적 이유에서 식량 지원을 지지하지만
주고 침맞는 일은 10년 겪었으면 이젠 말입니다. 모 영화 대사마냥
"많이 묵었다 아이가" 그렇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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